수동 트윗 모음 : 2014. 5. 11 ~ 2014. 5. 17
방금 전 거리에서 당통이 울부짖는 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걸 들으셨습니까? 당통이 거리에서 어떤 낯선 여자에게 “지금쯤 천국이 난리 났겠어...”라고 한 뒤 여자가 “네?”하고 되물으니 “그게, 천사 한 명이 지상으로 도망쳐 내게 와버린
오후 2:36 - 2014년 5월 11일 링크
것 같으니까...”라며 여자를 척 하고 가리키는 걸 보고,(https://twitter.com/copipe_TS/status/415886732618264578) 제가 “너에게로 도망친 천사가 한둘이 아니라 큰일인데? 어제는 마리 양, 그제는 잔느 양...”이라고 해서 벌어진 일이었으니 신경 쓰지 마십시오.
https://twitter.com/1789Robespierre/status/465077950618927104 혁명 프랑스는 공화국 즉 모든 시민의 나라가 한 사람의 군사독재자의 수중에 떨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야 한다고 어제 말했지요. 전제군주의 야심만을 위한 정복전쟁은 당연히 가장 간악한 죄악입니다. 이에는
오후 9:06 - 2014년 5월 11일 링크
많은 혁명파들이 동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자유를 위한 전쟁’ 또한 인민주권국가에 굉장히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혁명파들이 잘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궁정이 국경에 있던 외국인 용병들을 불러들여 파리를 포위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아르투아 백작을 비롯한 반혁명적 왕족이나 귀족들이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제3신분을 제압하려 한다는 의심은 지극히 타당하며, 완성된 계획은 아닐지라도 아마 그럴 태세는 갖추고 있을 것입니다. #아니었음 #원하긴_했고_경계할_만은_했지만 이런 형편이니
혁명 프랑스가 먼저 나서서 혁명을 위협하는 외국 전제군주들을 제압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도 충분히 그럴 만합니다. 또한 온 인류는 형제이므로, 전제정 아래서 고통 받고 있는 외국 인민들을 해방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고결한 형제애에서 나온 것이겠죠.
저는 결코 전쟁 자체를 반대하지는 않습니다. 우리 프랑스 혁명은 지금 세대의 프랑스인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전 세계의 인민들과 그들의 모든 후손들까지 전 인류를 해방시키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유를 얻는 데 불가피하다면 국민은 결코 전쟁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우리 내부의 적들을 굴복시킨 후에도 여전히 외부의 적들이 존재한다면 그 적들을 무찌르러 진군합시다. 그러나 우리의 혁명을 굳게 다지기 전에, 우리 스스로 자유를 쟁취하기도 전에 자유를 외국 국민들에게 주려는 것은 우리의 예속과
전 세계의 예속들 더 굳힐 뿐입니다! 이성의 전진이 천천히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인민의 편견과 무지가 전제정, 사악한 정부의 강력한 기반이 되고 있습니다. 이런 형편인 다른 국민들에게 무력 개입만으로 자유로운 법률을 채택하게 만들 수
있겠습니까? 무장한 포교자들을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자유를 수출하기 위해 자기 나라로 오는 프랑스 혁명군을 마주한다면, 아직 전제정에 속박되어 자유를 믿지 않는 국민들은 프랑스 혁명의 입헌 사상이 아니라 루이 14세의 정복전쟁을 떠올릴
것입니다. 프랑스 혁명의 도래가 이렇게 코앞에 있는 것도 운이 좋은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고 여러 다행스러운 상황이 겹치면서 이 혁명이 서서히 도래하지 않았다면 미국의 경우처럼 이렇게 쉽게 우리의 족쇄를 깨뜨릴 수 있을까요? 혁명의 시작인 삼부회가
특권계급이 국왕 폐하와 네케르 재무장관의 개혁에 저항하면서 요구한 것임을 생각하십시오. 혁명을 출발시킨 것은 귀족, 성직자, 부자들이고 그 후 인민이 출현했습니다. 그들의 저항과 잘못된 계산이 없었다면 국민은 여전히 전제정의 멍에 아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전쟁이란 군사 권력을 강화하게 마련이라는 점도 명심해야 합니다. 조국의 시선이 미치지 않는 낯선 나라에서라면 야심을 품은 장군이 자유를 사랑하는 동포시민들을 배신하고 군사쿠데타를 도모할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카이사르나 크롬웰이라면 스스로
권력을 차지할 것이고, 그들이 개성 없는 신하에 불과하다면 자신이 제1의 시종이 된다는 조건 하에 자신의 주인이 전제 권력을 되찾도록 도울 것입니다. 전쟁에서 패배한다면 외국 전제군주들이 자신의 친척인 프랑스의 왕실이 전제왕권을 되찾게 해줄 것입니다.
설마 선량한 루이 16세 폐하께서 그걸 바라시지는 않으시겠지만 말입니다. #그걸_바라고_혁명전쟁을_은밀히_고무했음 전쟁에서 승리한다 해도, 큰 승리를 거둔 어떤 장군이 국민의 희망이자 우상으로 떠오를 것이고 그 장군이 야심을 가진다면 군사독재자가 될
겁니다. #나폴레옹 시민의 종복이 되어야 할 군부가 거꾸로 시민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전쟁 이외의 어떤 상황도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자유를 질식시킬 수 없으며, 탄압법들을 통과시키는 데 더 좋은 조건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공포정치_비슷한가
* 맥락 설명하려고 조금씩 끼워 넣은 부분 말고는 전부 로베스피에르의 1791년 12월과 그 이듬해 1월에 한 혁명전쟁 반대 연설이나 기타 다른 연설들에서 따온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트윗은 쓰기 쉬웠죠 ㅋㅋㅋ 군사독재 즉 나폴레옹 1세의 등장을 예언했다는 것도 그렇지만, 공포정치에 적용될 수 있는 마지막 문장이 특히 놀랍네요. 적어도 이 시점에서는 공포정치 같은 억압적 정치를 원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정말 공포정치가 도래할 거고 그걸 자신이 주도할 거라고도 예상했을까요?
1791년 말 겨울과 이듬해 초 겨울에 혁명전쟁의 요구가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일어, 4월 20일 오스트리아에 선전포고함으로써 혁명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791년 6월 20일 국왕이 외국으로 망명 가려다 잡힌 바렌느 사건은 국왕이 외국 군대를 끌어들여 혁명 프랑스를 진압하려한 배신 행위로 보였고,(선전포고하자는 분위기가 무르익을 때, 자신이 혁명전쟁을 은밀히 고무하고 있고 외국 군대가 혁명정부를 무너뜨리고 자신에게 전제왕권을 되찾을 거라 기대한다고 적은 국왕이나 왕비의 편지들이 있음.) 전쟁은 인민들의 국왕에 대한 적개심을 돌리고 부르주아에게 정복의 경제적 이득을 가져올 방법으로 보였습니다. 그 때문에 입법의회 다수파이자 우파인 푀양파(입헌군주파) 중, 전쟁이 하층 인민의 정치 개입과 군주제의 붕괴를 불러올 거라 예언한 바르나브와 뒤포르 등의 극소수를 빼고는, 라파예트 등 자파 장군들이 승전으로 인기를 끌고 자코뱅파 등 급진파를 제압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며 전쟁에 찬성했습니다. 좌파인 자코뱅파에서도 브리소를 중심으로 한 다수(후일의 지롱드파)는 부르주아의 이익과 자유를 전파한다는 열광 때문에 전쟁 추진 세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후일의 산악파인 마라, 로베스피에르, 당통, 데물랭 등은 전쟁에 반대했고 이 대립으로 자코뱅 클럽이 분열한 겁니다. 로베스피에르는 11월 28일에 충동적으로 전쟁을 지지했다가 12월 9일의 연설을 시작으로 반전세력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수의 인민들이 혁명을 위협하는 외국들을 무찌르고 외국 인민들에게 자유를 전파한다는 기획에 갈수록 열광했고, 후일의 산악파는 목소리를 죽였습니다. 마라도 12월 15일 이후 침묵했고 당통과 데물랭도 로베스피에르를 포기했죠. 로베스피에르는 대세에 거의 홀로 맞서며 3월 26일까지도 전쟁에 반대했습니다. 봇의 트윗에서 말한 이유들 말고도, 군대가 승리할 가능성이 별로 없다, 즉 군대는 귀족장교들의 망명으로 조직이 붕괴되었고 무기도 장비도 탄약도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다는 것도 말했습니다. 봇은 1789년 시점이라 구체적으로 말 못 했지만 ‘대외전쟁 전에 국내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라는 일반론은 전쟁을 일으켜 외국의 귀족파에게 타격을 가하기에 앞서 국내의 귀족파를 다스리고 궁정을 제압하며 군대를 숙청해야 한다고 구체적으로도 표현했죠.
로베스피에르가 완전한 평화주의자는 아니었고, 전쟁이 아니었다면 보수적 물결이 승리했을 수도 있으니 지롱드파의 이상주의가 좌파로서는 현실적 해결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나중에 공포정치 기에는 ‘공화국에는 강화가 아니라 승리가 필요하다’(쿠통의 말이지만 찬성)라며 주전론에 섰죠. 그래도 이 전쟁이 혁명이 안정될 마지막 기회를 앗아가고 공포정치까지 요청하게 한 심각한 위기를 불러왔고, 제1공화국의 종말과 제1제정의 탄생을 낳았으니, 이 시기 로베스피에르의 반전론은 상당히 현명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Je vous rends mon âme(내 영혼을 당신께 돌려드리겠습니다)” http://youtu.be/6B1UGYTKJAs 쯧쯧,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님이 혁명을 피할 수 없게 된 지금에야 후회하고 계시는군요. 왕비님은 네케르 재무총감의 개혁을 반대해
오후 8:26 - 2014년 5월 12일 링크
그를 해임시키는 데 크게 일조했다가, 1788년에 그를 다시 불러들이기로 결정하자 울면서 “그가 성공하면...내 운명은 불행을 가져온다.”라고 말했다죠. 그 후 삼부회 제3신분 대표들의 개혁 요구를 완강하게 물리쳤고요. 왕비님의 한 인간으로서의 운명은
가엾긴 합니다. 어린 나이에 정략결혼을 한 뒤 굴욕적인 부부 생활을 7년이나 계속했기에, 기분전환을 위해 파티와 도박의 쾌락으로 도피했죠. 그나마 파티와 도박을 멈춘 후엔 친구들과 자식들과 함께 프티 트리아농 궁에 틀어박혀, 남을 지루하게 만드는
대부분의 궁정 조신들을 그곳 회합에서 배제하고, 오스트리아의 어머니 마리아 테레지아와 후에 오빠 요셉 2세를 위한 충실한 정보원 역할을 했고, 개혁적 대신들을 해임했습니다. 이렇게 무절제하게 권력을 휘두르는 것에서 부부 생활의 실망을 보상받은 걸까요?
평범한 인간으로서 그러고 싶었을 만했으나, 이 위태로운 나라의 왕비로서는 해선 안 될 행동이었습니다. 그 무책임함과 어리석음이 프랑스 왕국을 망쳤습니다. 프랑스 왕국을 망치겠다는 고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겠지만, ‘유사 이래 정치는 항상
책임이었습니다.’(#뿌리깊은_나무 #19화_정기준 http://youtu.be/2mZlK5xwqzs?t=2m6s #다른_맥락이지만) 혁명이 도래하고 있는 것은 옛 정치의 실패 때문이고, 지도자의 직위에 대해서도 실패를 불러온 정치 행위에 대해서도 왕비님은 책임이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저 여인을 조금도 동정하지 않습니다! 왕비를 위해 흘림으로써 낭비할 눈물이 있다면, 그녀가 베르사유나 트리아농에서 즐거워하는 동안 억압받고 굶주린 이름 없는 인민들을 위해서 마저 흘리겠습니다.
그런데 이 장면 연출이 무섭긴 하네요. 주변에 잘린 목들이 쌓여 있는 게 대체 뭔지 모르으아악!!! 마지막에 큰 칼날이 떨어졌죠? 뭐지? 아니, 책임지라는 게 그냥 절대왕권을 포기하고 인민주권을 인정하란 거지, 칼 맞고 죽으란 말은 아니었는데...;;
*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 19화에서 정기준이 “유사 이래 정치의 본질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어. 정치는 오직 책임이야.”라고 한 것은 백성들에게는 책임 질 능력이 없기 때문에 백성들이 정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는 보수적 논변이었죠. 그런데 혁명이 일어났을 때 자신이 운영하던 체제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옛 지배자들이 책임져야 한다는 급진적 논변으로 뒤집을 수도 있을 것 같아서 한 번 해봤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단두대 칼날 떨어지는 거 보고 놀라는 건, 로베스피에르가 처음에는 입헌군주정을 인정했다는 걸 살린 거예요. 처음의 요구는 절대왕권을 포기하고 인민주권을 인정하란 거였는데, 그걸 실현하는 데 방해되니까 목 잘랐죠..ㄷㄷ
https://twitter.com/1789Robespierre/status/464402898034511872 전에 시민적 영역에서 종교의 지배를 몰아내야 한다는 말을 했죠. 하지만 저는 무신론자가 아닙니다. 인간이 신을 경외하지 않고 도덕을 지킬 수 있을 거라 생각지 않습니다. 전제정을 정당화하고 지극히 부패한
오후 9:24 - 2014년 5월 13일 링크
가톨릭교에 대한 적개심이 혁명파 사이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도덕적 진실을 감싼 종교의 편견과 오류라는 봉투를 찢으려다 그 내용물까지 찢어질까 염려됩니다. 신의 천벌과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도덕적 의무도 두려워하지 않고 방탕하게 구는
것으로 귀결될까 걱정된다는 말입니다.’(http://www.marxists.org/history/france/revolution/mathiez/1910/robespierres-policies.htm 로베스피에르파인 필리프 부오나로티의 메모 중 “Under bad laws ~ feared hell.” 부분 변형) 그리고 억압 받아온 인민들에게는 자신을 억압해온 자들이
현세가 아니라면 내세에서라도 벌 받을 것이라는 위로가 필요합니다. 자유와 덕성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실현된 미래를 준비해 놓은 신이 자신들을 특별한 방식으로 보살펴준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위로 없이 어떻게 혁명의 적들에게 둘러싸인
비참한 처지의 인민들이 자신을 지탱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무신론은 귀족적입니다!’(#1793년_12월_6일_비기독교화_비판_보고서) 그런 위로가 필요 없는, 기득권에 편승하면서 부유하게 사는 자들이나 가질 수 있는 사치요 오만함입니다. 그래서
루소는 부유한 백과전서파의 철학자들을 공박했지요. 백과전서파는 ‘도덕적 차원에서 종교적 편견의 파괴를 넘어 종교 자체의 파괴로 나아갔습니다. 반면 정치적 차원에서는 늘 민중의 권리에 이르지 못했습니다.’(1794년_5월_7일_최고존재_숭배_보고서)
루소는 미천한 자들을 해방시키고 전 인민에게 권력을 부여했지만, 몽테스키외와 볼테르는 권력을 각각 특권계급과 상층 부르주아지에 국한시켰습니다. 볼테르는 자신의 저서 〈철학사전〉의 ‘평등’ 항목에서 “전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한 무수하고 유용한 사람들이
없었다면 인류는 존속할 수 없었을 것이다. (중략) 따라서 평등이란 가장 자연스러우면서도 동시에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다.”라고 쓰며, 전제정의 권위를 약화시키려고는 했으나 인민의 위치를 고양시키려 하지는 않았습니다. ‘가톨릭교 성직자들은 왕들이
신으로부터 전제권력을 부여받았다 하고 왕들은 성직자들이 신의 사자라 하며, 왕홀과 향로가 결탁해 하늘을 욕보이고 지상을 찬탈했습니다. 그들의 종교보다 더 신성모독적이고 무신론적인 게 또 있습니까? 모든 허구는 진리 앞에서 소멸하고 모든 광기는
이성 앞에서 쓰러집니다.’(#같은_보고서) ‘광신은 흉포하고 변덕스러운 짐승과 같으며 이성 앞에서 달아나게 되어 있지만 크게 소리치며 뒤쫓아 간다면 되돌아올 것입니다. 누구든 종교에 대해 자기 마음에 드는 견해를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은 누구든 무분별한 사람입니다.’(#1793년_12월_6일_비기독교화_비판_보고서) 그러니 가톨릭교를 방해하지 말고, 그것이 서서히 자유롭게 천수를 다하도록 만듭시다.
그런데 가톨릭교 사제들이 국교의 지위를 잃을까봐 종교적 자유에 반대하고 있는 지금 상황에서 가톨릭교를 없애려 하지 말라며 종교의 자유를 말하다니 저도 참 별 노파심을...하하;;
* 비기독교화 운동 : 1793년 말에 강하게 일어난 가톨릭교 반대 운동을 말합니다. 성직자 민사 기본법에 따라 선서하면서 혁명에 찬성 의사를 밝힌 입헌파 성직자들도 대부분은 기질상 군주주의자였고, 왕정을 사실상 폐지한 1792년 8월 10일 봉기와 국왕 처형을 개탄했으며 지롱드파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이에 따라 혁명적 민중의 반종교적 감정이 높아졌죠. 가톨릭 예배를 중지시키고, 교회의 청동 종과 귀금속을 혁명전쟁 수행을 위해 압수하고, 가톨릭교 대신 자유의 순교자(반혁명 세력에게 살해당한 혁명가 르 펠르티에, 샤리에, 마라) 숭배와 이성 숭배라는 새로운 숭배의식을 만들었습니다. 이게 단순히 신성모독으로 해석될 것은 아니고, 국가방위를 위해 자원을 동원하고, 종교적 상징을 구체제 지배의 표식으로서 공격하고, 새로운 시민적 문화를 구축하는 것이었습니다.(자세한 건 https://twitter.com/1789Amants_user/status/452057830095593472 https://twitter.com/1789Amants_user/status/464405122932420608 참고)
로베스피에르는 자신도 가톨릭에는 부정적이었지만 외국과 국내의 반혁명을 자극할까 염려해서, 종교의 자유(‘예배의 자유’)를 내세우면서 비기독교화 운동을 비판했죠. 당통과 입헌파 사제 그레구아르와 함께요. 국민공회도 반교권주의적 근본주의에 반대하는 맥락에서 종교의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는 법령을 1793년 12월 6일에 통과시켰습니다. 로베스피에르가 반대했던 무신론은 우리가 쓰는 무신론보다는 좁게, 종교를 믿지 말라고 적극적으로 설파하는 공격적 무신론이었고, 무신론에 반대했어도 이미 파괴되거나 세속적 용도로 쓰이고 있는 교회당을 예배를 위해 재건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성 숭배라는 무신론을 배척했지만 가톨릭도 역시 배척했기에 시민종교로서 루소적인 ‘최고존재의 숭배’라는 것을 제안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로베스피에르 봇으로 설명하겠습니다.
* (1794년_5월_7일_최고존재_숭배_보고서) : 이거 '#' 붙여서 해시태그로 만들었어야 했는데 실수했네요. 죄송^^;;
거기선 오늘이 ‘스승의 날’이라지요? 콜레주 시절의 스승님들을 생각하면 좀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제가 루이르그랑 콜레주에 다닐 때부터 아주 불성실한 가톨릭 신자였거든요. 수사 선생님들이 제가 가톨릭 교리에 무관심하다고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오후 10:27 - 2014년 5월 15일 링크
그분들께는 죄송하지만 저의 궁극적인 스승은 장 자크 루소라서 말입니다. 그분께서 말씀하신 보편적 자연 - 최고존재를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루소는 나를 나로 만들어준 스승이며, 전제정의 사슬에 매여 있을 때도 그 사슬을 부수는 위험한 과업을 앞둔
지금도 변함없이 제게 조언을 해주고 의지가 되는 스승입니다. 아르투아 주의 제3신분 대표로 뽑혀 전국 삼부회가 열리는 베르사유 궁으로 출발하기 전날, 희망과 불안이 소용돌이치는 마음을 달래려고 급히 장 자크 루소의 망혼에게 바치는 헌사를 썼습니다.
숭고한 이여! 당신은 내게 나를 아는 법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당신은 내게 나의 본성의 존엄함을 인정하게 해주었고 사회 질서의 가장 중요한 원리들을 숙고하게 해주었습니다. 나는 노년의 당신을 만났고, 이 기억은 내게 자랑스러운
기쁨의 원천입니다. 나는 당신의 위엄 있는 얼굴을 바라보았고, 그 얼굴에서 인간의 불의가 당신에게 남겨놓은 어두운 상심의 흔적을 바라보았습니다. 세상을 뒤흔들어놓은 가장 위대한 사건들의 무대에서 하나의 역할을 맡도록 부름받아, 전제정의 최후와 진정한
주권의 각성을 목격하고, 사방에서 몰려드는 폭풍의 전야에 선 지금, 나는 나의 생각과 행동을 나 자신에게, 그리고 곧 동료시민들에게 설명해야 합니다. 당신의 모범이 여기, 나의 눈앞에 있습니다. 나는 경애하는 당신의 자취를 따르고 싶습니다.
나는 다가올 몇 세기 동안 비교할 대상이 없을 이름을 남겨야 합니다. 전대미문의 혁명이 우리 앞에 펼쳐놓은 위험한 길 위에서 내가 당신의 글 속에서 끌어올린 영감에 변함없이 충실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입니다.
확신이 흔들릴 때, 제가 너무 작다고 느껴질 때, 이 글을 다시 꺼내봅니다. 그러면 스무 살 때 에름농빌(Ermenonville)로 찾아가 뵈었던 그 날처럼 루소가 다시 제 앞에 나타나 가르침을 상기시켜주시고 두려움을 몰아내주십니다.
그분의 가르침에 끝까지 충실할 수 있다면, 프랑스 혁명이 그분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에 아주 작은 보탬이나마 될 수 있다면, 그보다 행복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그것이 스승의 은혜를 갚는 길이겠지요.
* 1793년 11월 21일에 비기독교화 운동에 반대하는 연설을 자코뱅 클럽에서 하면서, "나는 콜레주에 다닐 때부터 아주 불성실한 가톨릭 신자였습니다."라고 단언했습니다. 그리고 장 마생의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에서는 '실제로 우리는 그가 모든 종교적 실천과 교리에 대한 무관심으로 루이르그랑의 교사들을 상심시켰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보편적 자연 - 최고존재를 열렬히 믿고 있었다.'라는 보충설명을 달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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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89Marat 마라 씨, 오늘 뿌린 신문은 위험했습니다! 저처럼 공공의 자유를 위협하는 음모가 있다, 각료들을 믿어선 안 된다, 이런 막연한 말이면 모를까, 그렇게 확실치도 않은데 사람 이름 지명하면서 고발해대다간 법정에 갈 수도 있습니다.
오후 11:06 - 2014년 5월 16일 링크
“@1789Marat: 푸하핫! 기왕 법정에 소환된다면 멋있게,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연기를 흩뿌리면서 ‘누가 감히 날 소환하였느냐!’ 라고 말해볼까?(https://twitter.com/funquotes_bot/status/438510949863940096)”
http://youtu.be/rDZKoJ5XMco?t=49s
“@1789Marat: 어... 로베스피에르? 그 동영상 클릭하니까 ‘그는 미쳤어(il sont fous), 그는 미쳤어.’ 하는데??”
오해입니다. ‘그들은 미쳤어(ils sont fous).’예요. 발음은 같지만.
“@1789Marat: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을 대신하는 것 같은데?”
그냥 솔렌느 양과 Citoyenne들의 노래가 좋아서 링크했을 뿐입니다.
“@1789Marat: 자네 참...교묘하게 말 잘하는 게 정치 잘 하겠구먼...”
별 말씀을.
* 로베스피에르 교묘하게 말 잘 한다 생각합니다. “인류의 적을 처벌하는 것은 관용이고, 그것을 용서하는 것이야말로 잔인함입니다.”라는 말로 공포정치를 정당화한 것도 그렇고, 기타 연설을 통해 의회와 여론을 조종하고 자기 편으로 끌어들이고 정적을 고립시키는 솜씨가 굉장해요. 나쁘단 게 아닙니다. 정치인으로서 꼭 필요한 능력이죠. 어떻게, 어떤 목적을 위해 사용하느냐에 따라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 수단 자체가 악하다고 보진 않습니다.
그리고 마라는 신문으로 고발적인 기사를 많이 써대서 법정에 자주 갔죠. 그런데 반혁명에 대한 경계심을 공유하고 있던 급진적 대중(상퀼로트)들에게 인기가 대단해서 풀려나고 영웅 취급받곤 했습니다. 자꾸 법정에 불려가니 지루했겠다, 성격도 마이웨이겠다, 이 '누가 감히 날 소환하였느냐' 드립을 알았으면 한 번쯤 했을지도...물론 그럴 리는 없죠, 설마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