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는 귀족들은 지배하기를 원하는 반면 인민은 지배당하지 않기만을 바라기 때문에 자유를 지키려면 인민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30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귀족의 정의(定義)를 다시 생각해야 합니다.
오후 8:56 - 2016년 2월 8일 링크
이 시대에 특권은 단지 혈통에 따라서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재산에 따라서도 생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주들이 자기 영지에서 독자적 지배권을 행사하는 봉건제가 사라진 지 오래고, 물론 여전히 봉건제의 이름으로 농민들은 영주에게 세금과 노역을
바치고 있습니다만 이제 그런 잔재마저 사라질 이 혁명의 때에, 신분에 의한 특권의 자리를 부(富)에 의한 특권이 대신하려 합니다. 지배층의 교체가 아닌 진정으로 지배가 사라진 자유를 위해 우리가 의지해야 할 것은 마키아벨리의 말대로 인민,
우리 시대에 맞게 고치면 가난한 인민입니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귀족과 인민의 관계가 우리 시대의 경우에도 적용되기 때문입니다. 지배자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자 하는 부자들과 달리, 가난한 사람들은 지배당하지 않고 자유를 누리기만을 바랍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자신의 자유, 자신의 삶, 자신과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의 안전이나 그들을 위한 보복을 얻어낼 권리, 억압을 떨쳐낼 권리, 자신의 정신과 마음의 모든 능력을 자유롭게 행사할 권리가 전부입니다.
부자들이여, 그들은 당신들이 얻는 더 많은 몫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불평등은 불가피하고 치유할 수 없는 악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것만을 요구하노니, 인간의 법으로는 빼앗을 수 없는 소멸되지 않는 재산만은 그들에게서 박탈하지 마십시오.
그나저나 그곳에서는 오늘이 전통적 설날, 음력으로 1월 1일이라지요? 그리고 이렇게 인사한다고 들어서 따라 해 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행복한 한 해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 로베스피에르는 은화 1마르크만큼의 직접세를 내는 사람만 피선거권을 갖게 하는 법에 반대하는 연설을 1791년 4월 20일 코르들리에 클럽에서 낭독했습니다. 이것은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 가난한 사람이 요구하는 것은 “나의 자유, 나의 삶, 나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의 안전이나 그들을 위한 보복을 얻어낼 권리, 억압을 떨쳐낼 권리, 나의 정신과 마음의 모든 능력을 자유롭게 행사할 권리”가 전부이다. “나는 당신이 얻는 더 많은 몫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불평등은 불가피하고 치유할 수 없는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법으로는 내게서 빼앗을 수 없는 소멸되지 않는 재산만은 내게서 박탈하지 말라.”
이후 르샤플리에가 수동시민에게서 청원권까지 박탈하는 법안을 제출하자 로베스피에르는 5월 9일과 10일 겨우 페티옹과 뷔조의 지지를 얻어 의회에서 격렬히 싸우는 한편, 10일 저녁에는 자코뱅 클럽에서 언론의 자유에 대해 긴 연설문을 낭독했습니다. 결국 최종적 법령에서 모든 개인의 청원권이 인정되었습니다. (출처 : 장 마생,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147~149쪽)
경제에 따라 빈자와 부자를 나누어 대립시킴으로써 사회경제적 관점을 보이지만, 경제적 불평등을 불가피한 것으로 보면서 정치적이고 정신적인 자유만을 보편적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하고 있죠. 로베스피에르와 자코뱅파가 좌파의 원조인 동시에 좌파와 다른 점이 이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현대 좌파들 중에서도 사유재산제와 빈부 차이를 인정하는 부류가 많지만 그들도 경제적 관점을 중요하게 생각하니까요. 뭐, 아직 자본주의가 제대로 발전하기 전이니 경제적 관점을 못 가졌던 게 딱히 그들에 대한 비판거리는 아니라고 봅니다. 그들도 자기 시대의 자식인 거죠.
https://twitter.com/1789Robespierre/status/696663902986240000 며칠 전에 귀족은 물론 부자들도 지배하기를 원하기에, 자유를 위해서는 지배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가난한 인민에게 의지해야 한다고 말했죠. 네, 인민을 위한 헌법의 시행이라는 우리의 목적을 가로막는 적들은 바로
오후 9:25 - 2016년 2월 10일 링크
사악한 자들과 부자들입니다. 그들은 어떤 수단을 사용할까요? 비방과 위선입니다. 그럼 어떤 원인이 이 수단들의 사용을 용이하게 하겠습니까? 상퀼로트(* 과격 혁명파 도시 노동자 계층)의 무지입니다. 따라서 인민을 계몽해야 합니다.
인민의 교육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기만으로 그들을 오도하는, 돈을 위해 글을 파는 작가들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매문가(賣文家)들을 침묵시킬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어떻게 이들을 민중의 대의에 결합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 자들은 자기 글을 사 주는 무리에 속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값을 치를 수 있는 사람들은 본래부터 정의와 평등의 적인 부자들과, 인민을 희생시켜 끊임없이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애쓰는 정부뿐입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째, 자유의 가장 위험한 적인 이 작가들을 무력하게 만들거나, 그게 여의찮고 상황이 위급하다면 추방시키기라도 해야 합니다. 둘째, 좋은 글들을 널리 퍼뜨려야 합니다. 인민의 교육을 가로막는 것으로 매문가들 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빈곤입니다.
그렇다면 민중은 언제 계몽되겠습니까? 민중이 빵을 갖게 될 때, 또한 부자들과 정부가 더 이상 민중을 속이기 위해 신의 없는 펜과 혀를 매수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의 이익이 인민의 이익과 합치될 때입니다.
그런데 언제 그들의 이익이 인민의 이익과 합치될 것이라 보십니까? 참담한 진실을 말하건대,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혁명이 가난한 인민들을 위하는 마땅한 길로 나아갈수록 부자들의 위협은 더 커질 것입니다.
외국의 전제군주들이 혁명의 확산을 막기 위해 혁명 프랑스를 위협하겠지만, 어쩌면 더 심각할 국내의 위험은 부르주아들로부터 옵니다. 부르주아들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결집해야 합니다. 공화국―늘 그랬듯 왕이 있든 없든 간에 주권이 인민에게 있는
국가를 말하는 것입니다―을 구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마련할 때까지 지금의 봉기는 계속되어야 합니다. 인민은 국민의회와 결합하고, 국민의회는 인민을 이용해야 합니다. 봉기는 같은 차원에서 점점 확대되고, 상퀼로트는 생계 안정을 위한 급료를 받으며
도시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외국과 전쟁을 벌여 나라 바깥의 군대에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상퀼로트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들을 계몽해야 합니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공화주의적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합니다.
* 처음에 링크한 마키아벨리 인용으로 시작하는 며칠 전 트윗에서도 인민에게 기대야한다고 했는데 오늘 트윗에서도 인민을 이용해야 한다며, 인민의 편을 들되 인민과 자신을 차별화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이것에 대해 로베스피에르를 비판할지 말지는 보는 사람의 선택이겠죠?ㅋㅋ
* 로베스피에르의 개인적 노트 두 개를 인용합니다. 1793년 6월 2일 ~ 7월 27일에 쓴 것으로 추정되며 첫 번째 것은 7월 10일 공안위원회에서 당통파가 밀려나기 전에 쓴 것이 확실하다고 합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이번 트윗은 그 노트를 거의 그대로 따왔습니다. 이야, 날로 먹었다~ㅋㅋㅋ
"목적은 무엇인가? 민중을 위한 헌법의 시행이다. 우리의 적들은 누구인가? 사악한 자들과 부자들이다. 그들은 어떤 수단을 사용할 것인가? 비방과 위선이다. 어떤 원인이 이 수단들의 사용을 용이하게 하는가? 상퀼로트의 무지이다. 따라서 민중을 계몽해야 한다. 그렇다면 민중의 교육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무엇인가? 기만으로 그들을 오도하는, 돈을 위해 글을 파는 작가들이다.
어떻게 이 매문가들을 침묵시킬 수 있는가, 아니면 어떻게 이들을 민중의 대의에 결합시킬 수 있는가? 그 자들은 값을 지불하는 무리에 속해 있다. 그런데 그들에게 값을 치를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은 본래부터 정의와 평등의 적인 부자들과, 민중을 희생시켜 끊임없이 권력을 확대하기 위해 애쓰는 정부이다. 그로부터 어떤 결론이 나오는가? 1. 자유의 가장 위험한 적인 이 작가들을 추방해야 한다. 2. 좋은 글들을 널리 퍼뜨려야 한다.
민중... 민중의 교육을 가로막는 장애물로는 또 무엇이 있는가? 빈곤이다. - 그렇다면 민중은 언제 계몽될 것인가? 민중이 빵을 갖게 될 때, 그리고 부자들과 정부가 더 이상 민중을 속이기 위해 신의 없는 펜과 혀를 매수하지 않게 될 때, 그리고 그들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 합치될 때이다. - 언제 그들의 이익이 민중의 이익과 합치될 것인가?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단일한 의지가 필요하다. 그 의지는 공화주의적이든가 아니면 왕정주의적이어야 한다. 그것이 공화주의적이기 위해서는 공화주의자 각료, 공화주의 문헌[신문], 공화주의자 의원, 공화주의 정부가 필요하다. 정치체가 혁명과 의지의 분열로 병들어 있을 때 외국과의 전쟁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다.
국내의 위험은 부르주아들로부터 온다. 부르주아들에게 승리하기 위해서는 민중을 결집해야 한다. 민중을 부르주아의 멍에 아래 두고, 공화국의 수호자들을 단두대 위에서 사라지게 만들기 위한 모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부르주아들은 마르세유, 보르도, 리옹에서 승리했다. 지금의 봉기[93년 6월 2일 봉기]가 없었다면 그들은 파리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다. 공화국을 구하는 데 필요한 조치들을 마련할 때까지 지금의 봉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민중은 국민공회(당시의 의회)와 결합하고, 국민공회는 민중을 이용해야 한다. 봉기는 같은 차원에서 점점 확대되고, 상퀼로트는 급료를 받으며 도시 안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군대에 보내서는 안 된다]. 상퀼로트들에게 무기를 제공하고, 그들의 분노를 자극하고, 그들을 계몽해야 한다. 가능한 모든 수단을 이용해 공화주의적 열정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출처 : 장 마생, <로베스피에르, 혁명의 탄생>, 438~440쪽
2월 14일 오늘은 발렌타인 데이(밸런타인데이)입니다. 고대 로마의 황제 클라디우스 2세가 병사들의 결혼을 금지하자 발렌티누스 사제가 이를 어기고 혼인성사를 집전했다가 순교한 날을 기념해, 연인 간에 사랑을 확인하는 축일이 되었다죠.
오후 6:40 - 2016년 2월 14일 링크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112565&cid=40942&categoryId=32179) 그런데 이 발렌타인 데이의 유래를 지금 우리 시대에 생각해 보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우리 시대에 자유로운 연애와 결혼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바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결혼식을 집전하고
유아 세례를 줌으로써 결혼과 출생의 정당성을 인정할 권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교회의 권력 밖에서 태어난 서자와 사생아, 그리고 미혼모들은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지요. 루소가 <사회계약론>에서 검열 때문에 끝내 지울 수밖에 없었던 주석에서 말했듯이,
교회는 결혼을 인정하는 권리를 독점함으로써 국가 자체까지도 자유롭게 치리할 수 있습니다. 사생아들만으로 이루어진 국가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https://ask.fm/Robespierre1789/answers/131792801151 참고) 이는 정말 중대한 문제입니다.
교회가 모든 인간의 탄생을 지배하고 있으니, 이 가공할 전제권력에서 놓여나지 않는 한 아무리 자유와 평등의 시민적 원리들을 법제화해도 소용없을 것입니다. 혁명 프랑스에서는 결혼을 두 남녀 간의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계약으로 정립하고,
가정생활을 규율할 권력을 교회가 아니라 국민 자신 즉 국가에 두어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자유로운 연애와 결혼의 문제는 단순히 두 사람 사이의 사적인 문제일 뿐만 아니라, 공적 자유와 긴밀히 연관된 문제입니다.
그러니 '연인들이여, 이제 우리의 금지된 맹세를 외칩시다.(Allons amants, déclamer nos serments, interdits.)' ("Ça ira mon amour")
Citoyens et citoyennes, 행복한 발렌타인 데이 보내십시오. (이미지 출처 http://www.voritos.com/valentine-chocolate-hd-collection/)
오늘 올랑프 드 퓌제 양께서 로낭을 만나려고 마라 씨의 인쇄소에 찾아오셨습니다. 로낭이 밖에서 일하고 있어서 만나지 못하셨죠. 로낭을 불러드릴 테니 기다리시겠냐고 물었는데 거절하셨습니다. 그런데 머뭇거리다가 저와 데물랭에게 이상한 질문을 하시더군요.
오전 6:53 - 2016년 4월 13일 링크
왜 인간의 존엄성을 말하는 혁명가들이 자기 자신의 목숨은 하찮게 여기냐고 말입니다. 제가 먼저, 존엄한 인간으로서 인간답게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게 때문에 인간으로서 살지 못할 바엔 차라리 죽겠다는 각오로 싸울 수 있는 거라고, 그것이 우리의 구호
"자유, 아니면 죽음을."의 의미라고 대답했습니다. 드 퓌제 양은 여전히 어두운 낯빛이셨습니다. 이번에는 데물랭이 다정한 어조로 무슨 일이 있으셨냐고 물었죠. 그러자 다시 잠깐 망설이시더니 꿈에서 누군가가 로낭을 죽이고 드 퓌제 양에게도 로낭 때문에
교수대로 끌려갈 거라고 말했다고 하셨습니다. 예지몽이란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데물랭이 선수 쳐서 말하더군요. "드 퓌제 양께서 걱정하시는 바를 알겠어요. 하지만 다 잘 될 겁니다(Ça ira). 생각해 보세요. 앙시앵 레짐은
다수의 가난한 인민들을 위험 속에 두는 체제였어요. 로낭을 보면, 평소에는 그나마 입에 풀칠하며 살다가 우연히 흉작이 들자 하루아침에 아버지가 살해당하고 땅을 몰수당했잖습니까. 대부분의 농민들은 풍작이 들어도 저축할 수 없게 만드는 무거운 세금 때문에
언제든 부랑자로 전락할 수 있었죠. 게다가 지방 영주들의 전횡도 심각해서 영주 소유의 숲에서 메추라기 하나 허락없이 잡은 죄로 교수형 당하기도 했어요. 우리 혁명은 세금 제도를 공정하게 만들고 법질서를 바로잡아 모두에게 더 안전한 곳을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 혁명은 드 퓌제 양과 로낭을 모두 지켜줄 겁니다. 로낭을 믿으시고 로낭이 믿는 혁명도 믿으세요." 사려 깊은 데물랭의 말에 드 퓌제 양은 얼굴이 한결 밝아져 나가셨습니다. 데물랭의 말은 진실로 옳은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혁명의 폭력을
비난하지만, 앙시앵 레짐이야말로 인민을 소수 특권 계급의 자의적 폭력에 지배당하게 만드는 체제였습니다. 그렇지만 데물랭의 말이 제겐 완전히 석연치는 않더군요. 혁명은 결국 모두를 안전하게 만들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토머스 제퍼슨의 말대로
애국자와 압제자의 피가 흐르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인민들이 제 한 몸이나 주변 몇몇 사람들의 안위만 생각했다면 이 혁명은 일어날 수 없을 것이고 영원히 사슬에서 헤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신을 자기 한 몸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모든 인류와 후세까지를 확대된 자신으로 생각해, '작은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더 큰 자기'를 지키겠다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신과 가족이 먹을 빵만이 아니라 자유와 존엄과 덕성 같은 더 위대한 것을 위해 일어서는 영웅적 각오 말입니다.
앞선 시대에 그런 자유의 영웅들이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있는 것이고, 우리 역시 그런 영웅이 되어야 후세에게 노예의 사슬을 물려주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데물랭도 잘 알고 있고 자신의 목숨을 바칠 각오가 되어 있지만 아직 계몽되지 못한 드 퓌제 양에게 앉은 자리에서 모든 걸 설득할 수 없으니 그쯤 한 것이겠죠.
* 1789 뮤지컬 중 올랑프의 악몽, "Je suis un Dieu"에서 '그[로낭]는 당신을 처형대로 끌고 가겠지.'라는 가사가 나오는데요, 카미유 데물랭이 숙청된 후 곧 아내 뤼실 데물랭(뒤플레시)까지 처형당했다는 게 떠올라서 뤼실의 기일(1794년 4월 13일)을 맞아 썰 풀어봤습니다... 혁명의 폭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복잡하지만 어쨌든, 뤼실을 비롯한 혁명의 희생자들의 명복을 빕니다.
1789년 7월 지금, 식량난이 극히 심각함을 모두들 알고 계시지요. 1789년 직전에 식비가 서민가계의 58%를 차지했고 1789년 들어서는 88%까지 치솟았습니다. 물론 이건 일차적으로 기상 악화로 인한 흉작 탓입니다. 1787년의 홍수와 가뭄,
오후 5:14 - 2016년 4월 16일 링크
1788년 7월 13일에 프랑스 서부에 내린 우박으로 1788년 여름 수확이 급감했습니다.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재앙이었죠. 그렇다고 해서 지금 인민들의 이 고통에 지도자들의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중국의 맹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와 돼지가 사람 먹을거리를 먹어도 수수방관하고, 길가에 굶어죽은 주검이 널려 있어도 나라 창고를 열지 않으면서, 사람이 죽은 건 ‘내 탓이 아니라 가을걷이가 안 좋은 탓’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칼로 사람을 찔러 죽이고도 ‘내 탓이 아니라 칼의
탓’이라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무지한 빈민들의 음모론대로 특권층이 앙심을 품고 일부러 곡식을 숨겼다가 후에 비싸게 팔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빈민들을 구하지 않는 것 자체가 그들의 큰 죄입니다. 흉년에 곡식이 부족한 것이 당연하다면,
왜 풍년에 곡식을 비축할 수 없었던 것입니까? 부유한 귀족들에게는 면세 특권을 주고 가난한 인민들에게는 무거운 세금을 부과했으니 풍년에도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었고 흉년에는 굶게 된 것 아닙니까? 게다가 1786년 영불 상업조약에 의해
영국 상품의 프랑스 수입 관세가 낮아져, 그에 밀린 프랑스의 직물 공업이 침체에 빠졌고 고용이 줄었습니다. 식자들의 말대로 자유경제가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왜 전체를 위한 희생을 가난한 이들만 해야 하는 것입니까?
분명 흉작은 하늘이 내린 것이나 그것을 이런 재앙으로 만든 것은 지도자들입니다. 혁명 전야의 상황에 대해 더 알고 싶으시다면 http://blog.daum.net/1789robespierre/6 이 역사 강의에서 '1부. 앙시앵 레짐 - 1.2. 앙시앵 레짐의 위기'를 중심으로
보십시오. 이왕 일어나 버린 일은 그렇다 칩시다. 사후에 흉작의 피해자들에게 이 왕국이, 지도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세금을 면제하거나 감면하고, 국고를 풀어 식량을 공급하고, 앞으로 또 이런 일이 생기지 않게 대책을 세웠다면, 정부가 이미 저지른
과오를 그나마 갚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대신 저들은 로낭의 아버지의 경우처럼, 굶주리는 이들에게 세금을 독촉하고, 항의하는 이들을 학살하고, 그 가엾은 빈민들을 질서를 어지럽히는 폭도라고 규정하고 죽어 마땅하다 했습니다!!
자신의 책임을 방기한 지도자들이 지금도 계속 지도자로서, 아니, 인간으로서 못할 짓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혁명의 분노는 정당하며, 저들은 마땅한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 하층민 대중의 비합리적인 음모론과 폭동이 그들 나름의 합리적 이유를 갖고 있었고 역사적 의의가 있다는 것으로, 조르주 르페브르 <1789년의 대공포>를 주로 참고한 시각입니다.
홉스가 자연 상태(인간이 국가, 정치 사회를 이루기 전)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만드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본 것, 그리고 루소가 인간을 자유롭고 평등한 자연 상태에서 영구적인 불평등 상태로 떨어뜨리는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본 것은
오후 11:22 - 2016년 5월 8일 링크
바로 '허영심'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 자신이 더 우월해지고자 하고 또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하는 마음을 말하죠. 이것이 상대를 끌어내려서라도 자신이 위에 서고자 하는 극한의 투쟁을 낳고 또 그로 인해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불평등이 생겨납니다.
홉스는 태초의 자연 상태에서부터 그렇다고 한 반면 루소는 태초에는 각자 흩어져 자유롭게 자족했는데 모여 살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지만, 두 사상가 모두에게 제1의 악덕은 허영심입니다. https://twitter.com/1789Robespierre/status/727857046616309761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은
전에 쓴 이 글을 참고하십시오. 가진 자는 허영에 차고 못 가진 자는 질투에 차서 아귀다툼하는 이 세상은 참으로 참혹한 곳입니다. 우리 프랑스 혁명은 모든 사람을 평등한 형제로 만듦으로써, 동료시민들과 사회, 조국을 더 큰 자기로 여기고,
조국에 기여함으로써 명예와 영광을 얻으려는 선의의 경쟁이 있을 뿐 오만과 시기는 사라질 것입니다. 사회적 불평등 즉 어떤 집안에서 태어났는가 하는 불평등은, 봉건제와 귀족 제도의 폐지를 통해 신분적 특권을 없애고 또 균등 상속 및 여성 상속권 인정을
통해 부의 대물림을 완화하고 누진세(소득, 재산이 많아질수록 세율도 높아지는 제도), 사회부조를 통해 빈부 격차를 줄여 부의 특권도 완화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겠죠. 그럼 자연적 불평등 즉 타고난 재능의 차이는 어떨까요? 신분적 특권의 문제는 혁명파
모두가 동의하고 있고, 부의 불평등의 문제도 구체적 해결책에 있어서는 의견이 갈려도 문제가 있다는 데에는 대체로들 동의하는데, 타고난 재능의 차이가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물론 재능의 차이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이 차이 때문에
사회적 지위나 경제적 부가 극단적으로 차이가 나고 허영과 질투를 일으킨다면 문제가 됩니다. 루소의 말대로 자연 상태에서는 각자가 자족적으로 살 능력을 지니고 있어서 신체적‧정신적 우월성이 있어도 남을 지배하지 못했다는 것을 생각하면, 재능의 차이가
불평등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어떤 집안에서 태어나느냐가 우연이듯이 얼마나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도 우연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천재를 신에게서 선물을 받은 사람이라고 칭하듯 재능은 신, 자연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재능은 개인이 가진 것이지만 사실 인류 공동의 재산입니다. 재능을 가진 개인들은 그것을 자기 한 몸의 허영을 채우는 데에 쓰지 말고 인민, 조국, 인류를 위해 사용해야 할 것입니다. 예술가들은 '그것을 고결하게 만들어주는 자유의 장식품이 되는
예술품'(* 1794년 2월 5일 정치도덕의 원리에 관한 보고서)을 창작해야 하며, 군대 장교들은 철저히 문민정부의 통제 하에서 자신의 군재를 발휘해야 합니다. 아무리 재능 있는 사람이라 해도 그 재능이 공공을 해치는 데에 사용된다면 무슨 소용입니까?
오히려 뛰어날수록 더욱 위험할 것입니다. 예컨대, 화학자 라부아지에 씨는 정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재능을 갖고 있고 화학적 업적도 굉장하지만, 그것이 그가 징세청부업자로서 인민을 착취하는 앙시앵 레짐(구체제)의 조세 체계에 협조했던 것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불합리한 구체제의 정부가 세금 징수권을 징세청부업자들에게 주고, 그들은 약속한 일정 금액을 정부에게 주고 납세자 인민들에게 엄청난 돈을 징수해 차액을 챙겼습니다. 앙시앵 레짐의 조세 체계에 대해 더 자세히 알려면
https://twitter.com/1789Robespierre/status/486472301789970432 이 글이나, http://blog.daum.net/1789robespierre/6 이 정리글에서 '3.2. 앙시앵 레짐의 조세 체제, 계몽사상' 부분을 보십시오. 라부아지에 씨가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여 이 착취의 조세 체계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협조했는지는 후에 조사해 봐야 확실히 알 일이지만, 어쨌든 협조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법 앞에서의 평등이라는 원칙에, 강제나 책임 능력의 부재가 아니라 재능과 업적 때문에 예외 사항을 만든다는 것은 말이 안 되잖습니까?
인민들에게는 자신들을 착취한 옛 압제자에게 보복할 권리가 있습니다. 이 권리를 혁명정부는 정당한 입법과 사법을 통해 공적 복수로 실현시켜야 합니다. 타협하겠답시고 유약하게 옛 압제자들을 용서해서 그들이 반격할 기회를 줌으로써 인민이 학살당하게 해서는
안 되며, 공적 복수를 이루지 못한 인민들이 사사로운 복수를 할 수밖에 없는 사태를 만들어서도 안 됩니다. 라부아지에 씨 자신에게도 정당한 처벌을 받아 속죄한 뒤 자신의 화학적 재능을 공공을 위해 쓰는 새 삶을 사는 편이 더 좋을 것입니다.
* 공포정치 중 1794년 5월 8일에 라부아지에가 징세청부업자였다는 이유로 처형당했죠... 그 날 기념 트윗입니다ㅋㅋ;; 로베스피에르가 했을 법한 생각을 말했을 뿐 봇주의 의견과는 무관합니다...
올해(1789년) 5월 5일에 전국 삼부회가 개회한 것은 아시죠. 이 전국 삼부회에 보낼 대표를 뽑기 위해 올해 초 각 지방마다 지방 삼부회가 열렸잖습니까. 아르투아 주 지방 삼부회에서 저는 회의에 참석하느라 노동을 하지 못한 수공업자들에게 그날치
오후 10:49 - 2016년 5월 14일 링크
임금을 보상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이루어지지 않았고 상류층은, 심지어 옛 친구들조차 저를 따돌렸지만 하층민들의 지지를 얻어 이렇게 아르투아 주의 제3신분 대표로 뽑힐 수 있었습니다. 자발적으로 공공에 봉사하는 시민적 덕성을 제가 늘 강조해왔다는 것에
비추어 보면, 지방 삼부회 회의에 참석하는 노동자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고 말한 것이 모순되어 보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공적 봉사를 하는 사람은 꼭 자기 사익을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나 사익과 공익이 충돌할 때는 늘 공익을 택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죠.
하지만 동시에 국가는 공공에 기여하는 사람에게 응분의 대가를 주는 체계를 갖추어야 합니다. 공적인 일, 정치참여에 보상이 제대로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런 일은 돈과 시간의 여유가 있는 부자들만이 할 수 있게 되고 가난한 사람들, 쉬지 않고 노동해야
생존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치에 참여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정치적 결정은 다수 빈민들을 대변하지 못하게 되어 결국 모두를 위한 것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저는 마라 씨가 인쇄비를 동지들에게까지 꼭 받아내는 것에 불만 없습니다.
마라 씨는 어조와 방법론이 다소... 많이 거칠기는 해도 인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또 인민들을 위하는 글을 씀으로써 파리 인민들로부터 큰 인기를 얻고 있죠. 그렇게 조국과 인민에게 봉사하고 있으니 그 대가를 받아 마땅하고, 오히려 사적 친분에 따라
잣대를 달리 한다면 그게 더 실망스러울 겁니다. 마라 씨 같은 사람이 부와 명예를 얻는 모습이 보인다면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인민의 목소리를 대변해 정치권에 압력을 넣는 바람직한 언론활동을 하게끔 고무할 수 있겠죠. 그런데 얼마 전에 데물랭이
마라 씨로부터 인쇄비를 55리브르나 요구받자 그 인쇄소에서 일하는 로낭이 밤에 잠입해서 인쇄해 주려다가 데물랭의 글을 경찰에게 들켜 바스티유 감옥에 갇히는 일이 있었습니다. 곧 탈옥했으니 망정이지 로낭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면 데물랭도 마라 씨도
죄책감에 시달렸을 테죠... 그렇지만 이 예상할 수 없었던 사태에 대해 마라 씨나 데물랭이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저 지배자들의 잘못일 뿐입니다. 마치 최근 늘고 있는 인민들의 소요 및 봉기 그리고 양측의 유혈에
대한 책임이, 자유와 빵이라는 응분의 권리를 위해 일어난 인민들이 아니라 지금껏 착취해 왔고 이제라도 요구를 들어주기는커녕 탄압하고 있는 지배자들에게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피와 눈물에 대한 책임은 정의를 위해 투쟁한 자들이 아닌
탄압과 폭력을 위해 무장한 자들에게 돌려야 할 것입니다.'(#알베르_소불_프랑스_대혁명사) 그나저나 올랑프 양이 로낭을 탈옥시켜 주면서 정치범으로서 자유를 위해 죽을 수도 있다며 안 나가려는 로낭에게 사람들이 당신을 죽이러 오고 있다고 말했다던데,
그 '사람들'은 왜 겨우 선전문 하나 들킨 이름 없는 농부를 몰래 죽이려 했을까요? 바스티유 감옥에서 몰래 살인을 할 수 있었다면 꽤 높은 사람의 지시를 받았을 텐데... 어떤 반혁명 음모가 꾸며지고 있을지 모르니 계속 경계해 주십시오, 시민 여러분.
자유롭게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음을 법적으로 인정받는 성년을 기념하는 날이군요. 고난과 시행착오를 겪을 수 있고 책임이 너무 무거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자신의 주인 되기를 포기 마시고 자신을 믿으시길.
오후 1:41 - 2016년 5월 16일 링크
(* 이미지 출처: https://pixabay.com/ko/%EC%9E%A5%EB%AF%B8-%EA%BD%83-%EB%B9%A8%EA%B0%84-%EC%9E%A5%EB%AF%B8-%EB%B9%A8%EA%B0%95-%EC%8B%9D%EB%AC%BC-%EC%A0%95%EC%9B%90-%EB%A1%9C%EC%A6%88-820576/)
그러고 보면 이 1789년도 자유 원년으로서 프랑스의 성년입니다. 이제 국왕과 소수 귀족들이 비공개로 공적, 정치적 결정을 하던 시대는 가고, 국민들이 스스로 공동체의 일을 결정합니다.
프랑스도, 앞으로 민주화될 다른 나라들도 많은 고난과 시행착오를 겪겠죠. 하지만 미성년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겁니다. 모든 국민들이 안팎으로 연대해 주권자 됨을 지켜내고 자유와 평등을 행복하게 누리길 바랍니다.
* 5월 셋째 주 월요일 성년의 날 기념, 장미 사진 첨부한 트윗.
얼마 전에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나 들었습니다. 요약해서 들려드릴 테니 여러분도 잠시 들어보시겠습니까?
법 앞에 한 문지기가 서 있습니다. 한 시골 남자가 와서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문지기가 거절하자 시골 남자는 나중에는 들어갈 수
오후 1:11 - 2016년 6월 5일 링크
있냐고 묻습니다. 이에 문지기는 대답합니다. "가능하오. 그러나 지금은 안 된다오." 법으로 들어가는 문 언제나 열려 있고 시골 남자는 몸을 굽히고 안을 들어다 보려 합니다. 그러자 문지기는 크게 웃으며 말합니다. "그렇게도 끌린다면 내 말을 어기고
들어가 보시오. 하지만 내 힘이 장사라는 걸 알아두시오. 게다가 난 말단 문지기에 불과하오. 갈수록 힘센 문지기가 서 있는데 나도 세 번째 문지기를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라오." 시골 남자는 법이란 누구든 언제나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으나,
문지기의 험상궂은 외양을 보고는 허락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합니다. 문지기는 의자를 주고 남자는 여러 날 여러 해를 앉아서 기다립니다. 시골 남자는 여행을 위해 준비한 것들을 값비싼 것까지 모두 문지기에게 뇌물로 주지만, 문지기는
주는 대로 받으면서도 "나는 당신이 무엇인가 소홀히 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하려고 받을 뿐이오."라고 말합니다. 수년간 시골 남자는 이 문지기만을 바라보며 애태우고, 큰 소리로 저주하다가 그조차 지쳐 투덜거리며 세월을 보냅니다. 마침내 눈이 침침해져
정말 주변이 어두워진 것인지 자기 눈이 착각한 것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남자는 그 어둠 속에서 법의 문으로부터 꺼질 줄 모르는 빛이 새어나오고 있음을 알아챕니다. 죽음이 임박한 순간 모든 생각이 여태 묻지 않았던 단 하나의 질문으로 모입니다.
남자의 눈짓에 문지기는 남자의 굽어 굳어진 몸을 향해 깊숙이 몸을 숙입니다. 시골 남자는 묻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법을 절실히 바랍니다. 그런데 왜 지난 수년간 저 말고는 아무도 입장을 요구하지 않았습니까?" 문지기는 남자의 임종이 가까움을 알고
그의 사라져가는 청력에 이르도록 큰 소리로 말합니다. "이 곳에서는 당신 말고는 아무도 입장을 허락 받을 수 없다오. 왜냐하면 이 입구는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것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이오. 나는 이제 가서 문을 닫아야겠소."
아주 암시적인 우화라 사람마다 해석이 제각각일 것입니다. 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문지기는 '나중에 들어갈 수 있을지 모르나 지금은 불가능하다.'라는 꽤 교묘한 말을 했습니다. 영영 들어갈 수 없다고 말했다면 포기하든 싸우든 확실한 수를 썼을 것이며,
언제 들어갈 수 있다고 시기를 확실히 말했다면 희망을 갖고 기다렸을 테고, 법의 문이 오직 그 시골 남자만을 위한 것이라는 마지막 대답을 일찍 알려줬다면 더 강단 있게 밀어붙였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지기의 애매한 대답 때문에 시골 남자는
평화롭게 허락받을 수도 있는데 위험하게 문지기와 맞서고 싶지 않아 기약 없이 허락을 기다렸습니다. 문지기와 맞서지 않은 것에 대해 시골 남자를 비난할 수 있겠습니까? 문지기와 싸우게 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지 모르고 그런 위험 없이 입장을 허락받을 수도
있다는 유혹이 있는데 말입니다. 이 시골 남자가 처한 난처함은 실제 세계에서 정치인이 아닌 일반 시민이 국가의 법률에 접근하려고 할 때 겪는 난처함과 유사합니다. 어떤 법률이 잘못되어 고치거나 없애야 한다고 생각할 때나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할 때 일반 시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청원, 집회, 시위, 혹은 법 체계 전체를 바꾸는 혁명 등으로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은 때로는 피곤하고 때로는 목숨까지 위험해지는 일입니다. 그래서 보통은 위정자들이 잘 해주기를 기다리고,
입헌민주주의 국가라면 선거 결과가 잘 나오고 대표자들이 자신들을 대변해주기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민주국가가 아닌 특권층만이 정치를 하는 국가라면 위정자들이 알아서 인민을 위해주는 것은 난망한 일입니다. 심지어 민주국가의 선거도 그리 효과적인 방책은
아닙니다. 보통선거도 아닐 뿐더러 언론이 부자 및 권력자들에게 휘둘려 그들의 사익이 공익인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므로 선거가 민의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고, 대표자들도 선거 때는 시민들에게 머리를 숙이다가 선출된 후엔 유권자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사익을 위해 활동합니다. 그래서 루소는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지만, 그들은 의원을 선출하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의원이 선출되자마자 다시 노예가 된다."라고 말한 거죠.
따라서 시민들은 주기적으로 치러지기는 하나 언제 제대로 된 결과를 낼지는 장담할 수 없는 선거를 앉아서 기다리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대신 문지기의 마지막 말이자 시골 남자가 가장 알아야 했던 것, "법의 입구는 오로지 당신만을 위한 것이다."를 기억해야 합니다. 결국 주권자, 즉 모든 권력의 원천은 인민 자신임을
명심하고 스스로 정치의 주체가 돼야 합니다. 선거 사이에 동료시민들과 활발히 토의하며 여론을 모으고, 청원, 시위를 통해, 때로는 무기를 들 각오까지 하며 대표자들에게 자기 말을 들으라는 압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물론 대표자들, 의회 의원들이 하는
공식정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지만 그러기 위해서라도 일반 시민들의 활동이 필요합니다. 선거 사이에 적극적으로 정치 참여를 해야 선거 사이와 선거, 공식정치 모두에 민의가 올바르게 반영되어 진정한 인민주권이 실현될 것입니다.
(봇주) 법의 문과 문지기 이야기는 프란츠 카프카의 장편 소설 <소송> 속에서 소송의 주인공 카에게 교도소 사제 성직자가 들려주는 전설입니다. 그러니 사실 프랑스 혁명보다 훨씬 뒤에 만들어진 얘기고 로베스피에르가 알 수 있을 얘기가 아니죠 ㅋㅋㅋ
http://www.qtessay.or.kr/n65a16.htm http://rikszine.korea.ac.kr/front/article/humanList.minyeon?selectArticle_id=386 전체 번역문과 해석은 이쪽을 참고하세요. 다만 봇의 트윗에는 링크한 두 글 속의 해석이 그리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특권계급의 방해로 삼부회가 마비되어 6월 17일에 제3신분 대표들이 독립적 의회인 국민의회를 선언한 뒤, https://twitter.com/1789Robespierre/status/479952654698049536 지난 20일에는 '테니스 코트의 서약'에서 국민의회는 입헌체제를 확고히 한다는 목적을 이룰 때까지
오전 3:04 - 2016년 6월 23일 링크
해산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죠. https://twitter.com/1789Robespierre/status/481029758881251328 오늘 친림회의에서는 국민의회를 해산하고 삼부회로 돌아가라는 국왕 폐하의 명령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의회의 독립성을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국민의회가 투쟁하는 지금은 아주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앙시앵 레짐에서는 국왕이 유일한 주권자로서 모든 권력의 근거였죠. 이제 국왕과 그가 임명한 각료들은 행정부라는 한 기관에 지나지 않게 되고, 그와 독립적으로 주권자 인민을 대리하는 입법부가 대등한 또 하나의 주권 기관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권력분립의 의의를, 특히 입법부의 의의를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삼권분립에서 입법부는 법률과 정책을 결정하고, 행정부는 정책을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실행하며, 사법부는 국민 간의 다툼을 법률에 따라 중재하고 범법자에 대한 처벌을 정합니다.
입법부의 구성원은 국민들이 선출한 의원들로, 다양한 신념과 이해를 지닌 국민들이 저마다 자신을 대변할 대표를 뽑기 때문에 의원들도 그만큼 다양합니다. 행정부는 영국 의원내각제처럼 의회가 내세운 총리나 미국 대통령제처럼 의회와는 별도로 국민들이 선출한
대통령이 1인의 행정수반이 되어 - 프랑스는 국왕이 국민의 재신임을 받아 행정부 수반이 될 것입니다. 저는 국민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선출된 것이 아닌 세습 국왕이 작은 실권이나마 갖는 것은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원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보지만. - 각료들을 임명하고 하급관료들을 통솔하기 때문에 동질적입니다. 이 차이는 입법부는 다양한 신념과 이해를 조정해 민의를 충실히 반영하는 법률 및 정책을 결정하는 역할을, 행정부는 이미 결정된 정책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역할을 맡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행정부는 신속하고 시원스러운 반면 입법부는 늘 갈등하고 오래 걸리고 답답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입법부의 의의가 있습니다. 갈등은 다양한 생각을 교환하는 장에서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으로, 민주주의의 건강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오히려 모두가 일치한 견해를 보일 때, 어떤 사람들의 목소리가 억압되어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강하게 경계해야 합니다. 정책을 결정, 집행, 평가하는 과정에서 첫 단추인 결정 과정을 맡은 의회는 오래 토론하며 소수의 의견까지 경청함으로써
소외되는 국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소수파가 의결을 방해하기 위해 연설을 계속 이어가는 '필리버스터'는 그 단적인 예일 것입니다. 아마 저도 의회 내 극좌 소수파로서 종종 하게 될 테고 #별명_7시간짜리_변호사 모리 신부같은 극우 소수파의 의사방해도
마찬가지로 허용돼야겠죠. 물론 의회 의원들이 개인이나 당파의 사익을 좇거나 협잡과 속임수를 사용한다면 그 점에 대해선 비판해야겠지만, 의회의 갈등 자체를 부정적으로 봐서는 안 됩니다.
입법부의 느림에 염증을 내 과거 전제정의 일사분란함을 그리워하는 순간 독재의 위험이 닥치는 것이며, 신속한 결정을 위해 억압당하는 목소리는 오늘은 다른 사람이어도 내일은 내가 될 수 있습니다.
* http://blog.daum.net/1789robespierre/13 링크한 두 트윗타래를 포함해, 1789년 6월 20일 테니스 코트의 서약부터 7월 14일 바스티유 습격까지를 그 날 일어난 주요 사건을 알리는 생중계 형식으로 썼던 트윗들을 모은 글입니다.
* http://blog.daum.net/1789robespierre/6 이건 앙시앵 레짐 말기부터 프랑스 혁명 초기까지 전반적 상황과 주요 사건을 개략적으로 설명하는 연재 트윗을 모은 글입니다. 부족하지만 참고가 되면 좋겠어요. 1789년 10월 5~6일 베르사유 행진까지 쓸 계획이었는데 테니스 코트의 서약까지 쓰고 기약없이 중단하고 있네요. 죄송합니다 ㅜㅜ 언젠가는 꼭 완성을... ㅠㅠ
https://youtu.be/NORXD0Vq7Es?t=2m55s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수레바퀴") "거대한 운명. 돌고 돈다네. 보라, 운명의 수레바퀴." 운명(fortune)의 상징물로 보통 수레바퀴를 떠올리죠. 하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오후 7:52 - 2016년 7월 13일 링크
고대 로마에서 운명의 여신 포르투나(Fortuna)의 상징물은 '풍요의 뿔(cornucopia)'이었습니다. (이미지 출처 :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Fortuna,_rielaborazione_romana_da_originale_greco_del_IV_secolo_ac._con_testa_non_pertinente,_da_tor_bovicciana_(ostia),_inv._2244.JPG) 그 때도 운명은 무서운 것이었습니다.
운명은 어마어마한 힘을 갖고 있으나 믿지 못할 것이고,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 운에 의존한다면 운명의 여신이 종국에는 늘 그렇듯 우리에게서 등을 돌릴 때 더욱 비참하게 몰락하기 쉽다는 것이었죠. 그러나 고대 로마인들은 운명이 결코 멈출 수 없는 해로운
힘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반대로 운명은 풍요의 뿔 속의 선물을, 즉 명예와 영광 같은 세속에서 가치 있게 여기는 것들을 노력하는 자에게 쏟아주는 선한 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운명은 신이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남성적인 것(vir)을 가진 남자에게
끌리며, 특히나 운명이 감탄하는 자질은 진정으로 남성다운 남자의 근원이 되는 속성, 즉 비르투스(virtus)입니다. 바로 덕성, 영어 virtue와 프랑스어 vertu 등의 어원이죠. 다만 지금의 그 단어들처럼 기독교적이고 순종적인 의미가 아니라,
명예와 영광을 쟁취할 수 있게 하는 영웅적인 자질들, 즉 역량, 능력, 활력, 결단력, 용기 등을 뜻합니다. 그런데 중세 시대에 기독교의 승리와 더불어 운명에 대한 이 고전적인 분석이 완전히 전복되었습니다. 인간이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이
부정되고, 운명의 여신은 눈먼 힘으로, 자신의 선물을 완전히 무심하고 무차별적으로 나눠주는 것으로 묘사됐습니다. 운명의 상징은 풍요의 뿔이 아니라 조수의 밀물과 썰물처럼 멈출 수 없이 돌아가는 변화의 수레바퀴가 됐습니다. 보에티우스(Boethius)의
<철학의 위안(De consolatione philosophiae)>에 이런 운명에 대한 중세적 분석이 잘 드러납니다. 이 삽화에서 수레바퀴의 꼭대기에는 왕이, 중간의 왼쪽에는 돈주머니를 쥔 상인이,
오른쪽에는 사냥매를 든 젊은 귀족이, 밑바닥에는 기사가 앉아 있지만, 수레바퀴가 돌면 모든 것이 바뀌죠. (이미지 출처: http://www.wga.hu/art/zgothic/miniatur/1451-500/1french1/37secula.jpg 설명 출처: http://www.flickriver.com/photos/neefer/3249313624/) 보에티우스는 왕의 총애를 받고
최고의 관직에 올랐다가 한순간에 몰락해 감옥에서 사형당할 날을 기다리면서 이런 무심한 운명을 통해 위안을 얻었습니다. 바로 운명의 여신은 은혜를 베풀 때 인간의 장점에 매우 무관심하고 부주의하기 때문에, 운명의 재화인 세속적 명예와 영광은 전혀 추구할
만한 가치가 없다는 점입니다. 이렇게 변덕스러운 전횡을 부리는 운명은 역설적으로 신의 섭리의 보조자가 되니, 행복이 지상의 유한한 삶에서 나타나는 우연적인 것들에 존재할 수 없음을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세속의 일을 경멸하고 천상의 영광을 추구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러다가 르네상스 시대에 고전적 가치가 부활하면서 운명의 옛 모습도 돌아왔습니다. 이탈리아에 피렌체와 베네치아 같은 자유로운 도시공화국들이 있었던 이 때 의지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도 주목받으면서, 인간이 운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도 돌아오고 세속적인 가치들도 인정받았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적 사상가인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운명은 여성이기에 남성적 자질에 쉽게 이끌린다는 고전적 비유를 다시 사용했습니다. 또한 운명이 남성적 자질 즉 비르투(virtù)의 결여에
분노해 그런 사람을 몰락시킨다는 부정적 측면도 지적하고, 이례적으로 선정적인 비유를 사용해 운명은 자신을 정복하고자 거칠게 다루는 것에서 도착적 쾌락을 느낀다고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프랑스 혁명에서, 혁명을 지도하는 부르주아들은 자유의 알레고리를
고대 로마의 여신처럼 그려내고 자크 루이 다비드의 신고전주의 양식의 그림에 열광하는 등 르네상스 시대처럼 고대 로마를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으로 하층민들 사이에서는 중세적인 운명의 수레바퀴를 떠올리게 하는 전복적인 이미지가 유행하고 있습니다.
한순간에 수레바퀴가 돌아가 위아래가 뒤집히는 것처럼 높은 자들이 낮아지고 낮은 자들이 높아지는 것, 그러나 보에티우스처럼 현실의 변덕에 체념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꿀 희망을 갖게 만드는 것입니다.
http://youtu.be/-srLjMRjoVI?t=52s "Ah! Ça ira(잘 될 거야), ça ira, ça ira. / 입법자들로부터 모든 것이 이루어지리라. / 자신을 높이는 자들을 낮추고, / 자신을 낮추는 자들을 올릴 것이다."
모든 것이 뒤집히는 무서운 순간이 옵니다. 천지를 진동시키며, 운명의 수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십니까? 말 그대로 회전, 혁명(révolution)입니다.
* 고대 로마,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운명에 대한 분석은 퀜틴 스키너의 <마키아베리의 네 얼굴>(강정인·김현아 옮김, 한겨레출판, 2008) 51~60쪽을 참고했습니다.
'수동 트윗'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동 트윗 모음 : 2017. 1. 15 ~ 2017. 12. 30 (0) | 2018.06.29 |
---|---|
수동 트윗 모음 : 2016. 7. 31 ~ 2017. 1. 14 (0) | 2018.06.29 |
수동 트윗 모음 : 2015. 8. 23 ~ 2016. 1. 30 (0) | 2018.06.29 |
수동 트윗 모음 : 2015. 1. 4 ~ 2015. 8. 22 (0) | 2018.06.29 |
수동 트윗 모음 : 2014. 10. 12 ~ 2015. 1. 3 (0) | 2018.06.29 |